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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와 세한도 (금석학, 추사체, 문인화) 박물관에서 오래된 그림 하나를 보다가 "이게 왜 명작이지?"라는 생각이 든 적 있으신가요? 저도 처음 세한도를 마주했을 때 그랬습니다. 삐뚤빼뚤한 집 한 채, 앙상한 나무 몇 그루. 누가 봐도 허름한 그림인데 동양 미술의 걸작이라 불린다니 당황스러울 수밖에요. 그런데 추사 김정희의 학문과 삶을 먼저 알고 나서 다시 보니, 그 선 하나하나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고증학에서 태어난 서체, 추사체추사 김정희를 이야기할 때 서예부터 꺼내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오히려 그의 학문적 뿌리를 먼저 짚는 편입니다. 추사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금석학 연구에서 자라난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금석학(金石學)이란 청동기나 비석처럼 금속·돌에 새겨진 옛 문자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쉽게 .. 2026. 5. 21.
한국미술사 박서보 단색화 (묘법, 물성, 치유)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추상화 앞에서 늘 당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뭘 봐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쳤죠. 그런데 박서보 화백의 단색화를 처음 마주한 날, 뭔가 달랐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고요함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이 글은 그 경험에서 출발합니다.묘법, 그림이 아니라 수행이라는 주장에 대해박서보 화백의 작업 방식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묘법(描法)입니다. 프랑스어로는 에크리튀르(Écriture)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서 에크리튀르란 단순히 '쓰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 자체가 곧 존재가 되는 과정을 뜻합니다. 캔버스 위에 무언가를 완성하는 게 아니라,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 자아를 지워나가는 일종의 수행(修行)에 가깝습니다.1970년대 초기 묘법이 특히 그렇습니다... 2026. 5. 21.
한국미술사 혜원 신윤복 (풍속화, 에로티시즘, 여성 시선) 야한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들이 오늘날 국보급 명작으로 불린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는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처음 제대로 들여다봤을 때, 단순히 '옛날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신윤복의 대표작들을 통해 그가 조선 시대 풍속화(風俗畵)에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지금도 유효한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당대엔 외면받았고, 일본인이 먼저 알아본 화가신윤복은 조선 후기, 단원 김홍도보다 한 세대 아래 화가입니다. 김홍도가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당대에도 이름을 날렸던 것과 달리, 신윤복은 살아 있는 동안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이 저는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재능이 있어도 시대가 받아.. 2026. 5. 20.
한국미술 조선 회화사 (도화원, 관념산수화, 문인화) 조선 시대 회화는 단순히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시(詩)·서(書)·화(畵)를 하나로 묶어 성리학적 세계관까지 담아낸 총체적 예술이었죠. 제가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솔직히 좀 압도되었습니다. 그림 하나를 그리기 위해 문학, 서예, 철학까지 꿰고 있어야 한다니, 현대인의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교양이 요구되었던 셈입니다.도화원과 문인화, 조선 회화의 두 축고려 시대에 이미 도화원(圖畵院)이라는 국가 관청이 운영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도화원이란 국가가 직접 화가를 선발하고 육성하던 전문 회화 기관으로, 쉽게 말해 그림 그리는 공무원 조직입니다. 고려의 이령, 이광필 부자가 이 도화원을 대표하는 화가들이었고, 송나라 황제 휘종이 이령의 그림을 보고 직접 상을 내렸다는 .. 2026. 5. 19.
한국미술사 조선 초상화 (카메라 옵스쿠라, 이명기·김홍도, 조선 회화) 조선시대 초상화 중 키를 정확히 절반으로 줄여 그렸다는 기록이 단 하나 남아 있습니다. 1787년 이명기가 그린 유원호 초상이 그 주인공입니다.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저는 그냥 흥미로운 일화로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엔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조선 화가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정확한 재현'을 추구했는지가 담겨 있었으니까요.카메라 옵스쿠라, 조선 화가들이 이미 쓰고 있었다유원호 초상 옆에는 작은 글씨로 이런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얼굴과 몸의 넓이와 길이를 실제 신체의 2분의 1로 줄여 그렸다는 내용입니다. 그림 속 인물의 키는 약 84cm로 표현되어 있으니, 실제 유원호의 키는 168cm였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조선시대 초상화 가운데 이렇게 구체적인 축척(縮尺), 즉 실물 대비 비율을 기록.. 2026. 5. 18.
한국미술사 작가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 화풍 변화, 예술적 경지) 조선 최고의 화가를 꼽으라면 누구를 떠올리십니까? 많은 분들이 단원 김홍도를 먼저 말씀하시는데, 김홍도가 그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겸재 정선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겸재의 노년 작품을 마주했을 때 느낀 건 단순한 감탄이 아니었습니다. '이게 정말 300년 전 그림인가'라는 당혹감에 가까웠습니다.중국 화풍을 베끼던 시절에서 진경산수화의 탄생까지겸재 정선이 처음부터 독창적인 화가였을 거라는 생각은 사실과 다릅니다. 초기의 겸재는 당대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중국 화보(畫譜)를 충실히 따라 그렸습니다. 화보란 일종의 그림 교과서로, 당시 조선의 화가들은 창의성보다 정해진 도상을 얼마나 잘 소화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호림박물관에 소장된 사계산수첩만 봐도 전형적인 .. 2026.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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