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들이 오늘날 국보급 명작으로 불린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는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처음 제대로 들여다봤을 때, 단순히 '옛날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신윤복의 대표작들을 통해 그가 조선 시대 풍속화(風俗畵)에서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지금도 유효한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당대엔 외면받았고, 일본인이 먼저 알아본 화가
신윤복은 조선 후기, 단원 김홍도보다 한 세대 아래 화가입니다. 김홍도가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당대에도 이름을 날렸던 것과 달리, 신윤복은 살아 있는 동안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이 저는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재능이 있어도 시대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냥 묻혀버리는 거잖아요.
신윤복이 세상에 다시 소환된 건 일제 강점기였습니다. 일본인 미술사학자 세키노 다다시가 신윤복을 재조명했고, 당시 일본인 소장가 도미타 기사쿠가 신윤복의 화첩인 혜원전신첩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화첩(畵帖)이란 여러 장의 그림을 묶어 엮은 책 형태의 작품집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그림 한 점이 아니라 화가의 세계관 전체를 담은 결집체인 셈이죠.
이 혜원전신첩을 간송 전형필 선생이 막대한 금액을 지불하고 국내로 되찾아왔습니다. 그 덕분에 신윤복의 작품들이 지금 우리 곁에 있습니다. 간송미술관은 현재 이 화첩을 포함한 신윤복의 작품 다수를 소장하고 있으며, 간송미술문화재단을 통해 연구와 전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일본인들이 김홍도보다 신윤복의 그림을 더 선호했다는 점입니다. 색감, 필치, 주제 의식 면에서 신윤복의 그림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는 건데요. 이걸 두고 "그러니까 신윤복 그림이 더 낫다"고 볼 수도 있고, "당시 조선 미감과 달랐기 때문에 외부인 눈에 더 특이하게 보인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좀 더 무게를 두는 편입니다. 신윤복의 그림은 조선의 시선이 아니라 그 시선 바깥에서 조선을 바라보는 눈으로 그려진 것 같거든요.
미인도와 월하정인, 그림 속 긴장감의 정체
신윤복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두 작품이 있습니다. 미인도와 월하정인입니다.
미인도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그냥 단아한 여인의 초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림 속 여성은 저고리의 옷고름을 풀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 것입니다.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 즉 행위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결되지 않은 그 찰나를 담아낸 겁니다. 결정적 순간이란 사진이나 회화에서 어떤 행위나 감정이 가장 극적으로 응축되는 순간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정식화한 용어입니다.
더 소름 돋는 건 여인의 표정입니다. 옷고름을 풀면서도 얼굴에는 아무 감정이 없습니다. 만약 농염한 미소라도 짓고 있었다면, 저도 그냥 야한 그림으로 보고 넘겼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무표정이 오히려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그래서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미술 평론가 오주석은 그림 속 여성의 시선이 신윤복의 낙관(落款), 즉 화가의 서명과 도장이 찍힌 위치를 향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낙관이란 그림의 완성을 확인하는 화가의 서명 방식으로, 단순한 서명이 아니라 작가의 존재를 그림 안에 새겨 넣는 행위입니다. 그 해석대로라면, 이 그림이 존재하는 한 여인은 영원히 혜원을 바라보고 있는 셈입니다. 제가 직접 그림을 확인해봤을 때 정말 시선의 방향이 그쪽으로 향해 있었고, 그 순간 꽤 오래 멍하니 있었습니다.
월하정인은 달빛 아래 두 남녀가 은밀히 만나는 장면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림에서 주목할 점은 초승달입니다. 초승달은 아직 채워지지 않은, 결핍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두 사람의 만남도 공식적으로 허용된 것이 아니고, 달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이 조응(照應), 즉 그림의 각 요소들이 서로 의미적으로 호응하는 구성 방식이 월하정인을 단순한 풍속 기록 이상으로 만들어 줍니다.
신윤복 그림이 가진 에로티시즘(eroticism)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로티시즘이란 성적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암시와 긴장감으로 표현하는 예술적 방식을 말합니다. 노골적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생기고, 그게 보는 사람을 더 오래 붙잡아 두는 힘이 됩니다.
단오풍정과 주유청강, 풍속화가 기록한 것들
신윤복의 풍속화를 분석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 단오풍정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그림을 김홍도의 씨름도와 한 쌍으로 봅니다. 단옷날 남성들이 씨름을 했다면, 여성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탔습니다. 그 두 장면을 각자 가장 잘 포착한 화가가 김홍도와 신윤복인 셈입니다.
단오풍정에서 신윤복이 특히 신경 쓴 부분은 화면 구성, 즉 조형적 완성도입니다. 사선 구도로 화면을 가로지르면서 머리를 감는 여성 네 명, 그네 타는 여성 셋, 짐을 이고 이동하는 여성 하나가 각각 배치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선 구도란 화면 안에서 인물이나 사물을 대각선으로 배치해 시각적 긴장감과 입체감을 주는 구성 방식입니다. 그 대각선 구도 끝 멀리 원근법을 살려 훔쳐보는 아이 두 명까지 넣어두었습니다. 이 디테일 하나로 그림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살아있는 장면이 됩니다.
이부탐춘도 인상 깊었습니다. 과부가 봄비를 즐긴다는 제목의 이 그림에서 신윤복은 짝을 이룬 참새 두 마리, 개 두 마리를 그려놓고 그것을 바라보는 두 여인을 배치했습니다. 여인들의 표정은 포커페이스에 가깝지만,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치마를 쥐고 있는 손에서 그 억눌린 감정이 다 드러납니다.
신윤복의 풍속화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그의 작품은 인간의 본질적이고 은폐되었던 욕망을 회화에 과감하게 드러냈다는 데 의의가 있으며, 봉건적 조선 사회의 규범에 저항하는 이념적 기반 위에 서 있다고 평가됩니다. 신윤복의 그림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화면 구성에서 사선 구도와 원근법을 적극 활용해 조형적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 색채를 절제해 자극보다는 여운을 남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 표정과 행위의 대비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했습니다.
- 달, 꽃, 동물 같은 자연물을 인물의 감정과 조응시켜 주제를 강화했습니다.
주유청강은 또 다릅니다. 강을 유람하는 배 위에서 젊은 양반 자제 두 명이 여성들에게 노골적으로 작업을 거는 장면인데, 한 명은 어깨에 팔을 올리고 다른 한 명은 거리를 두고 그윽하게 쳐다봅니다. 접근 방식이 다른 두 한량을 한 화면에 담아낸 겁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조선 시대에도 저런 놈들이 있었구나" 하고 피식 웃었습니다. 뒤편에서 경치만 구경하는 어른의 체통과 대비되니 풍자가 훨씬 날카롭게 느껴집니다.
신윤복의 그림이 지금도 살아 있는 이유는 아마 이것 때문일 겁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인간의 욕망, 위선, 사랑, 그리움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요.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저도 모르게 그림 속 인물들의 감정을 추측하게 됩니다. 그냥 보고 지나치지 못하게 만드는 힘, 그게 신윤복 풍속화의 본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윤복의 원작을 직접 감상하고 싶다면,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전시 일정을 확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