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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보 전시 이건희 컬렉션의 십장생도, 박수근 작품

by siwoo-mom 2026. 4. 27.

미국의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시카고 미술관에서 한국 국보 22건을 포함한 140건의 유물이 한꺼번에 전시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엔 '설마 그 정도 규모일까' 싶었거든요. 2021년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컬렉션이 이렇게 빠르게 세계 무대로 나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국 국보 전시

이건희 컬렉션이 시카고까지 간 이유

이번 전시의 공식 명칭은 '한국의 국보: 한국 미술 2000년'입니다. 시카고 미술관과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는 단순한 기획전이 아니라 이건희 컬렉션 해외 순회전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입니다. 제가 주목한 건 이 순회전의 구조입니다. 한때 사기업 총수 한 사람이 수십 년에 걸쳐 모은 유물들이 국가 기증을 통해 공공재가 되었고, 그것이 곧장 세계 최고 수준의 미술관 전시로 이어졌다는 흐름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시 구성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유물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큐레이터가 직접 밝힌 것처럼, 관람객이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달항아리(18세기 제작)와 김환기의 '에코'(1973년 작)가 나란히 맞이합니다. 여기서 이 배치가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는 점을 짚어야 합니다. 전시가 열리는 공간이 시카고 미술관의 '모던 윙(Modern Wing)'이기 때문입니다. 모던 윙이란 2009년 개관한 시카고 미술관의 현대·근대 미술 전용 건물로, 방문객들이 이미 현대 미술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입장하는 공간입니다. 이 맥락에서 전통 달항아리와 현대 회화를 나란히 세워 '이 전시는 전통과 현대를 함께 아우른다'는 메시지를 첫 발걸음부터 던지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전시를 구성한 방식을 분석해보니, 관람객의 동선을 근현대 미술 → 전통 미술 순으로 배치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낯선 한국 전통 미술로 바로 진입하는 것보다 이미 익숙한 현대 미술의 언어로 먼저 문을 열어주는 방식이죠.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봐야 할 주요 작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정선의 인왕제색도 —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표작
  • 김홍도의 추성부도 — 조선 후기 문인화의 정수
  • 천지현 명문 백자 대접 — 조선 왕실 도자기의 격식을 보여주는 유물
  • 삼국 시대 금동불 — 한국 불교 미술의 초기 형태
  • 고려 시대 천수관음보살도 — 고려 불화의 섬세한 채색 기법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
  • 궁중 화원 추정 십장생도 — 열 폭 병풍 구성의 대형 채색화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이건희 기증품은 총 2만 1,693점으로, 이 가운데 국보 및 보물급 문화재만 60여 건에 달합니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이번 시카고 전시에 출품된 22건의 국보·보물은 그중에서도 해외 전시에 적합하다고 판단된 엄선된 작품들입니다.

십장생도와 박수근, 전통과 현대가 말하는 것

제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본 작품은 궁중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십장생도입니다. 십장생도란 해·산·물·구름·소나무·대나무·거북·학·사슴·영지 등 장수를 상징하는 열 가지 소재를 한 화면에 담은 전통 회화입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는 열 가지가 아니라 열두 가지 소재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천도복숭아와 바위가 추가로 포함된 것인데, 이는 단순히 소재가 더 들어간 게 아니라 그림을 주문한 쪽의 욕망이 더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읽힙니다.

이 작품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미네랄 피그먼트(Mineral Pigment) 기법입니다. 미네랄 피그먼트란 청금석, 공작석, 진사 등 천연 광물을 갈아 만든 안료로, 수백 년이 지나도 색이 바래지 않고 선명하게 유지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안료는 조달 자체가 어려웠고, 다루는 기술도 전문 화원이 아니면 습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열 폭 병풍 규모에 이 안료를 아낌없이 쓴 작품이라면 궁중 발주품이라는 추정이 설득력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직접 작품 이미지를 들여다보면서 느낀 건, 수백 년 전 안료가 지금도 저렇게 선명하다는 사실이 솔직히 좀 놀라웠어요.

 

박수근의 작품 앞에서는 다른 의미로 멈추게 됩니다. 박수근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화가가 된 인물입니다. 그가 구사한 마티에르(Matière) 기법은 미술 전문 용어인데, 마티에르란 그림 표면의 질감 자체를 회화적 표현의 요소로 삼는 기법으로, 유화 물감을 여러 겹 올리고 긁어내기를 반복하면서 화강암이나 벽면 같은 거친 표면을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박수근은 캔버스와 물감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미군 가족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그 대가로 물감과 캔버스를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그의 그림을 다시 보면, 두껍게 쌓인 물감 층 하나하나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절박한 창작 의지처럼 보입니다.

프로비넌스(Provenance)라는 개념도 이 전시에서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프로비넌스란 미술품의 소유 이력과 출처를 추적하는 개념으로, 작품의 진위 여부와 문화재 반출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입니다. 이건희 컬렉션의 경우, 국가 기증이라는 명확한 소유권 이전 이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해외 순회 전시에서도 프로비넌스 논란이 발생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 점은 다른 국가의 문화재 해외 전시 사례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유리한 조건입니다. 실제로 문화재청은 국외 문화재 협력 전시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협력 기반을 넓혀가고 있습니다(출처: 문화재청).

이번 전시는 3월 7일부터 7월 5일까지 약 4개월간 시카고 미술관 모던 윙에서 진행됩니다. 한국 미술을 전혀 모르는 미국 관람객도 전시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전통과 현대를 모두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성이라는 점에서, 이 전시는 단순한 문화 홍보를 넘어서 한국 미술의 맥락을 짚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시카고에 갈 계획이 있다면, 7월 5일 이전에 모던 윙 방문 일정을 넣어두는 것을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7kkWWOZ2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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