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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화가 박수근 (마티에르 기법, 서민화가, 마가렛 밀러)

by siwoo-mom 2026. 5. 29.

박수근의 그림 한 점이 한국 근현대 미술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인 독학 화가의 작품이 그 자리에 올랐습니다. 저는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단순한 성공 스토리라고 넘겼다가, 그의 그림 앞에 실제로 서본 뒤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국미술 화가 박수근

마티에르 기법 — 화강암 같은 표면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박수근의 그림을 처음 본 사람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색도, 형태도 아니라 '표면'입니다. 손으로 만지면 거칠 것 같은, 바위를 쪼아낸 듯한 그 질감. 이것이 바로 마티에르(matière)입니다. 마티에르란 회화에서 물감이 캔버스 위에 쌓인 물질적 질감과 두께감을 의미하는 용어로, 그림의 표면 자체가 하나의 조형 요소가 되는 개념입니다.

박수근은 이 마티에르를 만들기 위해 유화 물감에 왕겨처럼 건조한 물질을 섞었습니다. 그리고 붓과 나이프를 번갈아 쓰면서 캔버스 위에 층층이 물감을 올리고, 말리고, 또 올렸습니다. 한 작품의 표면은 8개에서 많게는 20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완성까지 한 달 반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가 이 과정을 처음 알았을 때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그냥 거칠게 물감을 바른 게 아니라, 층마다 기법과 건조 방식을 달리한 치밀한 계산의 결과였던 겁니다.

그의 화실에는 고려청자와 토기, 그리고 경주를 오가며 직접 뜬 탁본들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탁본(拓本)이란 석비나 석물의 표면에 종이를 대고 먹을 찍어 문양을 그대로 옮겨낸 것을 말합니다. 박수근은 신라 석물의 막새 문양과 전통 인장들을 수집하며 화강암 특유의 질감을 캔버스 위에 재현하는 방법을 스스로 연구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말한 '소박성'의 실체입니다. 꾸밈 없이 생긴 그대로의 미,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의 결. 그 정의를 듣고 나니 그의 그림이 왜 오래된 돌담처럼 편안한지 비로소 이해가 됐습니다.

임파스토(impasto) 기법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임파스토란 물감을 두껍게 올려 질감을 강조하는 기법인데, 박수근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떼묻힘'이라 불리는 덧칠 방식으로 층 위에 층을 얹었습니다. 작고 직전까지 그리던 미완성 작품에서 이 기법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저는 그 그림 앞에서 한참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한쪽 눈을 이미 잃은 상태에서도 그렇게 붓을 쥐고 있었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수근 그림의 마티에르가 특별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유화 물감에 건조 물질을 혼합해 화강암과 유사한 표면 질감을 구현
  • 8~20개 층을 반복 적층하는 다층 채색 방식 적용
  • 층마다 건조 기법을 달리하여 자연스러운 깊이감 형성
  • 신라 석물 탁본과 전통 문양을 질감 연구의 참고 자료로 활용

서민화가와 마가렛 밀러 —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박수근의 그림이 1950~60년대 한국에서보다 외국인들에게 먼저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전쟁 직후 절대 빈곤의 시대에 한국인들은 그림을 살 여유가 없었습니다. 반도 화랑에서 한 달에 한두 점씩 꾸준히 팔려나간 것은 주한 외교사절과 미군 가족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마가렛 밀러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박수근의 가장 힘든 시기를 함께한 컬렉터이자 후원자였고, 그의 그림을 서른 점 이상 수집했습니다. 한국 근무가 끝난 뒤에도 그의 작품을 미국에서 적극적으로 소개했으며, 1965년에는 미국 디자인 잡지에 '조용한 아침의 나라, 화가 박수근'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직접 글로 썼습니다. 박수근이 작고하기 열흘 전, 그녀가 보낸 편지에는 뉴욕 전시 준비 소식과 그림 판매 희소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결국 박수근은 그 전시의 개막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작품을 보는 눈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그림 속 나목 하나가 달리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목(裸木)이란 잎이 없는 겨울나무를 뜻하는 말로, 박수근 그림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소설가 박완서가 PX 초상화부에서 박수근을 처음 만났던 기억을 소재로 쓴 소설 제목이기도 합니다. 잎 하나 없이 서 있지만 봄을 품고 있는 나무. 박수근은 그것이 전쟁과 가난을 견디며 살아낸 서민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시대 엄마의 등, 골목 어귀의 행상인, 햇볕에 쪼그려 앉은 남자들 모두 그의 이웃이었고, 가족이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 박수근의 그림이 재조명되기 시작했으며, 현재 그의 작품은 한국 근현대 미술 시장에서 최고 수준의 낙찰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박수근미술관은 그의 작품과 드로잉 3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의 예술 세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전시하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미술관 자료를 찾아보니, 엽서보다 작은 소품 하나에도 특수 렌즈로만 보이는 개울 풍경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꼼꼼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그림 속 세계를 구축했는지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박수근이 그림의 주제로 삼은 인물들을 보면 그의 시선이 어디에 닿아 있었는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아이를 업은 여인, 빨래하는 사람들, 노점상, 행상인. 그는 비 오는 날 길가의 아주머니 세 명에게 골고루 과일을 나눠 샀다고 합니다. 이웃의 고단함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사람. 그 마음이 캔버스 위의 층층이 쌓인 물감 속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박수근의 그림은 그가 살던 시대를 증언하는 동시에,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도 말을 걸어옵니다. 초등학교 졸업장 하나로 밀레를 꿈꿨던 소년이 독학으로 쌓아 올린 그 층들이 오늘날 한국 미술의 가장 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그림 앞에 서 보신 적 없다면, 한 번쯤 양구까지 직접 가보시길 권합니다. 화면 속 질감은 실물 앞에서야 비로소 온전히 전달됩니다. 글이나 사진으로는 절대 따라갈 수 없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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