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국미술 윤형근 작가 (천지문, 단색화, 경매가)

by siwoo-mom 2026. 5. 28.

현대미술관에서 검은 기둥 같은 그림 앞에 멍하니 서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무게감이 느껴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윤형근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면서 모든 것이 있는 그림,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한국미술 윤형근 작가

세 번의 옥살이가 만들어낸 붓질

윤형근이 처음부터 이런 그림을 그린 건 아닙니다. 1928년 충청북도 청주 출신인 그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몸으로 겪었고, 이후 세 차례 복역과 한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직후에는 보도연맹에 끌려가 학살 직전까지 갔고, 1956년에는 부역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을 보냈습니다. 1973년에는 숙명여고 미술 교사로 재직하던 중 중앙정보부장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부정 입학 비리를 고발했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다시 잡혀갔습니다.

그 모든 걸 겪고 나서 45세가 된 1973년, 그는 비로소 지금 우리가 아는 그 그림들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사실이 처음에 조금 의아했습니다. 보통은 고통이 창작을 막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윤형근의 경우에는 오히려 반대였거든요. 울분을 삭이고 나서야 비로소 덜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초기 1960년대 작품에서는 화백 김환기의 영향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윤형근이 김환기의 사위이기도 했기 때문인데, 색감이나 구성에서 스승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시기입니다. 그러다 1973년 이후부터 완전히 다른 작가로 탈바꿈합니다.

천지문, 하늘과 땅 사이를 그리다

윤형근의 대표 작업 개념이 바로 천지문(天地門)입니다. 여기서 천지문이란 하늘을 상징하는 청색과 땅의 색인 암갈색 안료인 번트 엄버(Burnt Umber)를 섞어 만든 검정에 가까운 색조로 면포나 마포 위에 기둥 형태를 그려낸 작품 세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하늘과 땅이 만나는 문을 화폭 위에 세워놓은 셈입니다.

번트 엄버(Burnt Umber)란 산화철을 주성분으로 하는 천연 광물성 안료로, 특유의 깊은 암갈색을 냅니다. 이 색과 청색 안료인 울트라마린(Ultramarine)을 혼합하면 단순한 검정이 아닌, 보는 각도와 빛의 양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깊이감 있는 먹빛이 탄생합니다. 제가 실물 작품을 가까이서 본 순간 느꼈던 그 묵직함이 바로 이 안료 조합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블루는 하늘이요, 엄버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천지라 했고 구도는 문이다." 직접 쓴 말이니만큼 작품 해석의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됩니다. 단색화(Dansaekhwa)라는 한국 추상화의 흐름 안에 있으면서도, 윤형근의 천지문은 유독 조선 선비의 기개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단색화란 1970년대를 전후해 한국 현대미술에서 발전한 단일 색조 또는 절제된 색채 중심의 추상 회화 운동을 가리킵니다.

1980년 광주항쟁 당시 제작된 다색 연작을 보면, 기둥들이 쓰러지려 하면서도 서로 기대어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구도입니다. 물감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번짐 효과가 그 시대의 슬픔을 아무 말 없이 담아냅니다. 그림 하나가 할 수 있는 말의 무게가 그런 거라는 걸, 이 작품 앞에서 처음 실감했습니다.

도널드 저드와의 만남, 세계 무대로

윤형근의 국제적 도약에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습니다. 1991년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가 한국을 방문해 윤형근의 화실을 직접 찾아와 작품 세 점을 구입한 것입니다. 저드는 이후 자신이 설립한 텍사스주 마르파의 치나티 파운데이션(Chinati Foundation)과 뉴욕에서 윤형근 개인전을 열어주었습니다.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란 불필요한 요소를 극도로 제거하고 형태와 재료 자체에 집중하는 예술 사조를 말합니다. 저드가 윤형근의 작업에서 그 공통분모를 발견했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저는 이 두 사람의 만남이 단순한 스타일의 유사성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윤형근의 절제는 미학적 선택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 시대를 견뎌낸 방식이었고, 저드는 그 결을 알아봤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드를 만난 이후 윤형근의 작업은 더욱 확신에 찬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추사 김정희의 서예에서 비롯된 추사 미학(秋史美學)을 바탕으로 한 절제와 여백, 그리고 서구 미니멀리즘의 조형 언어가 하나의 화면 안에서 만납니다. 추사 미학이란 추사 김정희가 정립한 서예 미학으로, 과잉 없는 필획과 여백의 긴장 관계를 핵심으로 합니다. 붓이 지나간 자리와 남긴 공백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윤형근의 화폭에서도 그대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윤형근이 걸어온 이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60년대: 김환기의 영향 아래 색채와 형태를 실험하는 시기
  • 1973년: 수감 이후 천지문 개념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 작업 시작
  • 1980년: 광주항쟁을 전후해 번짐과 기울어진 기둥으로 시대적 아픔을 담아낸 시기
  • 1991년: 도널드 저드와의 만남 이후 더욱 간결하고 확신에 찬 조형으로 전개

경매 시장에서 윤형근이 갖는 의미

윤형근의 경매 최고가는 2016년 K옥션 홍콩에서 낙찰된 작품 넘버 블루로, 160만 달러, 한화 약 18억 원을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예상가보다 1.5배 높은 가격으로, 이 해 경매에서 작가의 최고가 상위 5점이 모두 갱신될 만큼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특히 크리스티 홍콩, 크리스티 런던, K옥션 홍콩 등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흐름이 눈에 띕니다.

국내 경매로 넘어와 보면, 2020년 9월 K옥션에서 1993년 작 번트 엄버 앤드 울트라마린(Burnt Umber & Ultramarine) 두 점이 각각 5,400만 원과 6,700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2018년 크리스티 홍콩에서 유사한 크기의 동명 작품이 약 4,500만 원에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2년 사이 가격이 눈에 띄게 올랐습니다. 한국 단색화 시장의 성장세와 맞물린 결과로 보입니다.

방탄소년단 RM이 윤형근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이후 젊은 세대의 관심이 확산된 것도 분명 영향을 줬을 것입니다. 저는 이 현상이 단순한 팬덤 효과라고 보지 않습니다. 알고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작가였는데 그동안 접근 경로가 좁았던 것이고, RM이 그 문을 열어준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적 위상에 대한 논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연구 자료에서도 꾸준히 다뤄지고 있습니다.

그림을 어렵게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추상화 앞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윤형근의 그림은 설명을 읽고 나서 다시 보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저 기둥이 그냥 검은 붓질이 아니라, 한 사람이 세 번의 옥살이를 지나 살아남은 자리라는 걸 알고 나면요. 관심이 생겼다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한 실물 작품부터 한번 마주해보시길 권합니다. 

반응형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한국미술사 정리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