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 (건립배경, 구조특징, 일제피해)

by siwoo-mom 2026. 5. 3.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경주에 처음 갔을 때 석가탑과 다보탑이 왜 나란히 서 있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탑이 두 개네" 하고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두 탑에는 불교 경전의 내용을 돌로 구현한 깊은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두 탑이 함께 세워진 이유부터 각각의 구조적 특징, 그리고 안타까운 역사까지 짚어보겠습니다.

두 탑이 나란히 선 이유, 알고 계셨나요

불국사 대웅전 앞마당, 동쪽과 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탑을 보면 자연스럽게 "왜 탑이 두 개일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대칭 장식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두 탑을 함께 세운 근거는 법화경(法華經)에 있습니다. 법화경이란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 중 하나로,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장면을 다보불이 옆에서 "그 말이 옳다"고 증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현재의 부처와 과거의 부처가 한자리에서 진리를 확인하는 장면을 탑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동쪽의 다보탑이 다보불을, 서쪽의 석가탑이 석가여래를 상징합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두 탑을 다시 바라봤을 때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단순한 석조물이 아니라, 불교 세계관을 공간으로 펼쳐놓은 입체적인 경전처럼 보였습니다. 두 탑의 높이가 모두 10.4m로 동일하게 설계된 것도 이 대칭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부분입니다(출처: 문화재청).

석가탑의 구조, 단순함 속에 담긴 정밀함

석가탑은 국보 제21호로, 정식 명칭은 불국사 삼층석탑입니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단이란 탑의 무게를 지탱하고 지면과 탑신 사이를 잇는 받침 구조물을 뜻합니다.

구조를 살펴보면 정밀함이 돋보입니다. 기단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는 목조 건축의 기법을 석재로 옮긴 것입니다. 탑신에도 같은 방식으로 기둥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옥개석)의 모서리는 살짝 들어 올려져 있어 전체적으로 가볍게 날아오르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저는 이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돌로 만들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가벼워 보일 수 있는지, 직접 보면 묘하게 감탄이 나옵니다.

석가탑의 핵심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2단 기단 + 3층 탑신의 정형(定型) 구조
  • 목조 건축 양식을 석재로 재현한 우주(隅柱, 모서리 기둥) 조각
  • 지붕돌 모서리의 반전(反轉)으로 경쾌한 상승감 표현
  • 탑 주변 연화문(蓮花紋, 연꽃 무늬) 주춧돌 배치
  • 2층 탑신 내부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봉안

특히 1966년 복원 작업 중 2층 탑신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확인되었습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란 불교 주문을 새긴 두루마리 형태의 경전으로, 닥나무 종이에 인쇄되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출처: 국립경주박물관).

다보탑의 구조, 층수를 셀 수 없는 탑

다보탑을 처음 마주했을 때 솔직히 당황했습니다. 석가탑은 몇 층인지 바로 보이는데, 다보탑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한 층인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바로 다보탑의 정체성입니다.

다보탑은 국보 제20호로, 특수형 탑의 대표 사례로 꼽힙니다. 특수형 탑이란 2단 기단에 3층 탑신을 올리는 일반형 석탑과 달리, 독창적인 형태로 설계된 탑을 가리킵니다. 석가탑이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면, 다보탑은 특수형 석탑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조를 들여다보면 십자형(十字形) 평면의 기단에 사방으로 돌계단을 놓고, 그 위에 팔각형의 탑신을 올렸습니다. 탑신 주위로는 사각형 난간이 둘러져 있어 4각, 8각, 원형이 한 탑 안에서 공존합니다. 여기서 탑신이란 탑의 몸체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층의 개념을 담고 있는 핵심 구조물입니다. 각 부분의 길이와 두께를 균일하게 통일시키면서도 복잡한 목조 건축의 구조를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점이 8세기 통일신라 석조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복합 구조를 돌로 구현하면서 시각적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현대 건축가가 봐도 쉽지 않은 설계입니다.

다보탑이 간직한 일제강점기의 상처

두 탑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보탑에는 역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이 탑이 온전하지 않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1925년경 일본은 다보탑을 전면 해체하여 보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탑 속에 봉안되어 있었을 사리(舍利)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모두 이 시기에 사라졌고, 지금까지 그 행방을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사리란 고승이나 부처의 유골을 뜻하는 것으로, 탑을 건립하는 핵심 이유 중 하나가 사리를 봉안하기 위함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 있던 돌사자 네 마리 중 세 마리가 약탈당했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다보탑에는 한 마리만 남아 있습니다. 보존 상태가 가장 좋았을 세 마리가 사라진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알고 나서 다보탑을 바라보는 마음이 묵직해졌습니다. 화려한 조형미 뒤에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가 있다는 것, 그게 오히려 더 강하게 남습니다. 오래전부터 반환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세 마리의 행방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두 탑 모두 통일신라 경덕왕 10년, 김대성의 발원으로 창건된 불국사와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 세워진 두 탑이지만 석가탑은 무영탑(無影塔)이라는 슬픈 전설을, 다보탑은 일제 약탈의 상처를 각각 품고 있습니다. 경주를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탑의 아름다운 조형만이 아니라 그 안에 쌓인 이야기들을 함께 떠올리며 바라보시길 권합니다. 분명 같은 탑이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반응형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한국미술사 정리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