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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라 마투라 불상 (양식 비교, 굽타 불상, 도상 기원)

by siwoo-mom 2026. 4. 26.

같은 부처를 표현했는데, 한쪽은 그리스 조각처럼 보이고 다른 한쪽은 근육질 인도인처럼 보입니다. AD 1세기, 인도 북서부의 간다라와 중부의 마투라에서 전혀 다른 두 불상 양식이 거의 동시에 탄생했습니다.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이게 같은 종교 맞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간다라 마투라 불상비교

불상기원: 그리스인이 만든 부처인가 ?  간다라 불상을 둘러싼 논쟁

간다라 불상을 처음 실물 사진으로 봤을 때 제가 받은 충격은 꽤 컸습니다. 곱슬머리에 오뚝한 콧날, 깊이 패인 눈두덩이, 그리고 신체 전체를 감싼 두꺼운 옷의 굴곡 있는 주름까지. 머리카락을 가리면 아테네 어딘가의 박물관에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이 불상들이 오늘날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일대, 즉 간다라 지역에서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후반의 일입니다. 당시 서구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불상이 사실상 그리스·로마 예술의 산물이라는 시각이 강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 이 지역에 정착한 그리스계 유민들이 불교와 만나면서 자신들이 익숙하던 신인동일형(神人同一形)의 조각 방식, 즉 신을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는 논리였습니다. 여기서 신인동일형이란 신적 존재를 이상화된 인간의 형태로 표현하는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의 핵심 원리를 말합니다.

간다라 불상의 재질은 그 지역 특유의 편암(片岩)입니다. 편암이란 열과 압력을 받아 층층이 분리되는 성질을 가진 변성암으로, 간다라 불상 특유의 회청색 빛과 차갑고 딱딱한 질감의 원인이 됩니다. 이 재질이 주는 색감은 묘하게도 불상의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눈을 반쯤 감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 우울한 표정, 깊은 사유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 시절의 모습을 담은 듯한 그 얼굴과 찬 회청색 돌의 조합은 뭔가 비장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간다라 불상의 착의법은 통견의(通肩衣)입니다. 통견의란 양쪽 어깨를 모두 덮는 방식으로 옷을 걸치는 것을 뜻하며, 신체 전체가 두꺼운 천에 가려집니다. 이 때문에 간다라 불상은 옷주름 표현 자체가 핵심 조형 요소가 되고, 번파식(翻波式) 주름, 즉 파도가 뒤집히듯 굴곡지는 사실적인 옷주름이 신체 선을 따라 촘촘히 새겨집니다.

주제 면에서도 간다라 지역은 석가모니의 역사적 생애를 다룬 불전도(佛傳圖)가 많습니다. 불전도란 부처의 탄생부터 열반까지 생애의 주요 장면을 연속적으로 표현한 서사적 도상 양식으로, 유럽인의 합리적·역사적 사고방식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간다라 불상은 AD 1~3세기에 편암으로 제작된 것들이 절정을 이루었고, 이후 5세기경까지는 스투코나 테라코타 재질로 이어졌습니다.

간다라 불상과 마투라 불상의 핵심 차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재질: 회청색 편암(간다라) vs 붉은색 사암(마투라)
  • 착의법: 통견의, 양 어깨 덮음(간다라) vs 편단우견, 오른쪽 어깨 드러냄(마투라)
  • 얼굴 표현: 반개안(半開眼)의 우울한 명상 표정(간다라) vs 활짝 뜬 눈과 자신감 있는 미소(마투라)
  • 신체 표현: 두꺼운 옷주름 중심(간다라) vs 옷이 밀착되어 신체 자체를 강조(마투라)
  • 주제: 석가 역사적 생애의 불전도 중심(간다라) vs 전생 이야기인 본생담 중심(마투라)

양식비교: 마투라 불상과 굽타 불상  

마투라 불상을 처음 보면 간다라 불상과 같은 종교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제가 실제로 사진 자료들을 나란히 두고 비교해봤을 때 그 이질감이 꽤 강했습니다. 마투라 불상은 머리에 크고 우렁찬 상투를 올린 민머리에 인도인 특유의 넓고 자신감 있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눈은 활짝 열려 있고 미소는 당당합니다. 깨달음의 희열을 표현했다는 해석이 저는 꽤 설득력 있다고 느꼈습니다.

마투라 불상의 착의법은 편단우견(偏袒右肩)입니다. 편단우견이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옷을 걸치는 방식으로, 신체 표현에 집중하기 위한 인도 고유의 미학적 선택이었습니다. 옷은 극도로 얇아서 신체에 완전히 밀착되고, 왼쪽 어깨에 추상적인 평행 주름 몇 가닥만 새겨진 것으로 옷의 존재를 간신히 암시하는 수준입니다. 언뜻 보면 나체에 가까울 정도로 신체의 팽만감과 건장함이 전면에 드러납니다.

재질도 완전히 다릅니다. 마투라 불상은 붉은색 사암(砂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사암이란 모래 입자가 굳어 형성된 퇴적암으로, 마투라 지역에서 나는 것은 살색에 가까운 따뜻한 붉은색을 띠어 인체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재질로 꼽힙니다. 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질감은 간다라 편암의 차갑고 무거운 느낌과 극적인 대비를 이룹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한 것은 마투라 불상이 인도 재래의 약샤(Yaksha)·약시(Yakshi) 조각 전통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출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불교 미술 컬렉션 해설). 약샤란 인도 고대 신앙에서 자연과 풍요를 관장하는 반신적 존재로, 건강하고 팽만한 신체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마투라의 불상 조각가들은 부처를 이 인도 고유의 생명력 있는 신체 미학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마투라 불상 양식은 BC 3세기부터 이어진 약샤·약시상의 전통을 바탕으로 AD 7세기 굽타 불상까지 약 천 년에 걸쳐 이어집니다. 반면 간다라 불상은 AD 1~5세기에 걸친 비교적 짧은 기간에 머물렀습니다. 결국 인도 고유의 미학이 더 긴 생명력을 가졌다는 것이 제가 이 자료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대목입니다.

AD 3세기경부터 두 지역 양식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굽타 시대인 AD 4~5세기에 이르러 두 양식의 절충이 완성됩니다. 굽타 불상은 이목구비는 마투라 양식을 따르되, 머리카락은 두 지역의 것이 결합하여 소라껍데기 모양으로 말린 나발(螺髮) 형태로 정착했습니다. 나발이란 달팽이 껍데기처럼 촘촘히 말린 작은 곱슬 머리카락의 형태를 말하며, 이후 동아시아 불상의 표준 도상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착의법은 간다라식 통견을 채택했으나, 마투라식으로 얇은 천이 신체에 밀착되어 신체 굴곡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 굽타 불상은 고전 양식의 규범이 되어 중국과 한국 불상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습니다(출처: 스미소니언 아시아 미술관).

저는 이 과정이 단순한 양식 혼합이 아니라, 마투라가 주도권을 쥔 흡수였다고 봅니다. 굽타 불상 안에서 마투라적 요소가 간다라적 요소보다 훨씬 강하게 살아 있다는 점이 그 증거입니다.

두 양식이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인도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기후, 재료, 외부 문화권의 유입, 그리고 내재한 신앙의 결이 만들어낸 복합적 결과일 텐데, 저는 이 수수께끼가 오히려 이 불상들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찰의 불상들이 어떤 뿌리에서 왔는지 궁금하다면, 간다라와 마투라, 그리고 굽타 불상의 흐름을 한 번 짚어보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넓은 시야를 열어줄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eZZQ3KuP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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